나무한그루/등산자료실

몽유도원도(1)

우낭사 2008. 5. 30. 09:52

 

 

<몽유도원도〉(부분), 안견이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린 산수화(1447), 38.7×106.5cm,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 소장

 

안평대군은 어느 날 꿈에 본 아름다운 도원의 모습을 안견에게 들려주며 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 그림이 바로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이다. 그림의 앞부분에 있는 안평대군이 직접 쓴 서문(序文)에는 세종 29년 4월 20일 한밤중에 박팽년을 비롯한 당시의 유명한 신하들과 함께 꿈속에서 도원을 유람한 내용을 자세히 적고 그 꿈을 줄거리로 하여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고 쓰여져 있다. 그 내용은 중국 북송대 도연명(陶淵明)이 쓴 〈도화원기(桃花園記)〉와 비슷한 내용으로, 이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도 여럿 전한다.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큰 바위가 가로막고 바위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들어가 보니 복숭아꽃이 활짝 핀 한가로운 마을이 열리고 몇몇 사람들만이 살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도화원기〉의 내용과 비슷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나 사람들은 없고 인가 두어 채와 복숭아꽃만 활짝 피어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무나 산의 표현에서 당시 유행했던 북송대 곽희(郭熙)의 화풍을 엿볼 수 있는데, 바위산의 아랫부분은 구름에 싸여 부풀어오르듯 솟아 있고, 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진 한림(寒林)을 해조묘법으로 표현하여 험준한 산과 평화로운 도원의 대조가 뚜렷하다. 더구나 안평대군을 비롯한 세종조 여러 문신들의 제발문(題跋文)이 있어서 회화사나 서예사에 있어서 매우 가치가 높다. 이 그림은 두루마리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보통의 두루마리 형식과는 달리 그림 속의 사건 전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이 되는 점이 특이하다.

 

두루마리 안쪽에는 첫머리에 〈몽유도원도〉라고 쓰여진 제첨(題簽:제목)이 붙어 있고, 그 다음에는 폭 25cm의 푸른색 비단 바탕에 여섯 행의 붉은 글씨가 쓰여 있다. 이 주서(朱書)는 안평대군이 1450년, 즉 〈몽유도원도〉가 완성된 3년 뒤에 쓴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세상 어느 곳이 꿈꾼 도원인가
(世間何處夢桃源)
은자(隱者)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野服山冠尙宛然)
그림 그려 보아 오니 참으로 좋을씨고
(著畵看來定好事)
여러 천년 전해지면 오죽 좋을까
(自多千載擬相傳)
그림이 다 된 후 사흘째 정월 밤
(後三日正月夜)
치지정에서 마침 종이가 있어 한마디 적어 맑은 정취를 기리노라
(在致知亭因故有作淸之)